문어와 갑오징어가 배경에 맞춰 몸 색을 바꾼다는 이야기는 흔한데, 이 동물들의 눈에 광수용체가 한 종류뿐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걸렸다. 색을 보려면 감도 곡선이 서로 다른 수용체가 둘 이상 있어서 그 응답을 비교해야 하는데, 두족류에는 비교할 상대가 없다. 알려진 예외는 반딧불오징어 정도로, 같은 옵신에 서로 다른 발색단을 붙여 시색소 세 개를 갖는다. 나머지는 원리대로라면 흑백으로 본다. 그런데 색을 맞춘다.
2016년에 나온 가설 하나는 이 모순을 광학으로 푼다. Stubbs 두 사람이 쓴 PNAS 논문은 렌즈가 파장마다 초점을 다른 거리에 맺는 색수차를 결함이 아니라 신호로 본다. 두족류의 동공은 원형이 아니라 W자나 가로로 긴 틈처럼 축에서 벗어난 모양인데, 이런 동공은 색수차를 줄이는 대신 오히려 키운다. 그러면 렌즈를 앞뒤로 움직여 초점을 훑을 때 상이 가장 또렷해지는 위치가 파장에 따라 달라진다. 채널을 비교해서 색을 읽는 대신 초점 위치로 읽는 셈이다.
여기까지도 그럴듯한데, 논문 안에 이미 걸리는 데가 있다. 초점이 맞는 위치는 파장에만 달린 게 아니라 물체까지의 거리에도 달렸다. 읽어낸 값은 하나인데 모르는 값은 둘이다. 저자들도 이 거리와 색 사이의 모호성을 자기 한계로 적어뒀다.
넉 달 뒤 Gagnon 등이 반박 편지를 실었다. 메커니즘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두족류가 실제로 사는 곳에서는 신호가 남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방식은 물체가 좁은 파장대만 반사할수록 잘 먹히는데, 두족류가 몸을 맞추는 산호와 모래와 해조류 같은 바닥은 대부분 넓은 파장대를 두루 반사하는 칙칙한 색이다. 거리가 멀어지면 물의 탁도가 색과 윤곽을 같이 지운다.
거리 쪽 지적은 더 아프다. 앞서의 모호성은 가까울수록 심한데, 저서성 문어는 대체로 단안이라 거리 단서를 따로 얻기 어렵고 동종의 신호는 몸길이도 안 되는 거리에서 들여다본다. 색이 제일 필요한 지점에서 방법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같은 호에 실린 답변에서 저자들이 든 반례는 예상 밖이었다. 자연의 바닥이 칙칙하다는 건 받아들이면서, 갑오징어는 이리도포어로 파장이 뾰족한 구조색을 자기 몸에 만들고 그 아래에 가는 검은 선을 깔아 대비를 준다고 답했다. 환경에서 좋은 신호를 찾는 게 아니라, 보내는 쪽이 받는 쪽의 이상한 해독 방식에 맞춰 신호를 직접 만든다는 얘기다. 이 논쟁에서 제일 재미있는 지점이 여기라고 생각한다. 지각의 문제로 시작한 질문이 통신의 문제로 넘어간다.
작년에는 이 방식을 사람이 직접 만들어봤다. Arja 등이 볼 렌즈에 이벤트 카메라를 붙이고 초점을 모터로 훑는 장치로 컬러 필터 없이 파장을 구분했고, CVPR 2025 이벤트 비전 워크숍에 실렸다. 채널을 늘리는 대신 초점을 흔들어 같은 정보를 뽑아낸다는 뜻인데, 정보가 센서 개수가 아니라 센서 앞에 놓인 광학에도 들어 있다는 얘기라서 이 부분이 오래 걸렸다.
다만 구현이 된다는 건 그 메커니즘이 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증명이지, 문어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증명은 아니다. 두 문장은 붙어 다니지만 같은 말이 아니다. 계산상 붉은색과 검은색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나온 깡충거미를 두고 놓친 광학적 요소가 있는지 행동 실험으로 다시 확인한 작년 연구가 있는데, 결론은 계산이 맞았다는 쪽이었다. 색을 복원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해서 동물이 그 여지를 쓰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10년이 지났는데도 이 질문은 열려 있다. 문어가 눈이 아니라 피부의 옵신으로도 빛에 반응한다는 결과가 따로 있어서, 답이 눈 바깥에 있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논문에 적힌 데까지고, 어느 쪽이 맞는지는 결국 동물을 상대로 한 행동 실험이 정할 문제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반박도 정확했고 답변도 정확했다는 정도다. 양쪽 다 맞는데 결론이 안 나는 상태가 10년째다.